성명소원: 자료 번역
『성명소원』 사고전서본 제요
사고전서 제요 본문 번역 · 각 권의 본문 제외
한국어 번역
『흠정사고전서』 자부 제7, 술수류 제5, 명서·상서 부류에 속하는 『성명소원』의 제요이다.
신들이 삼가 살펴보니 『성명소원』은 다섯 권이며, 편집자의 성명이 적혀 있지 않다. 제1권은 『통원유서』로, 당나라 장과의 설을 모아 기록한 세 편이다. 제2권은 『과징문답』으로, 명나라 이징이 장과를 만나 구술로 전수받았다고 일컫는 네 편이다. 제3권은 『원묘경해』로, 장과가 짓고 원나라 정희성이 주석했다고 한다. 제4권은 『관성요결』이고 제5권은 『관성심전구결보유』인데, 두 권 모두 누가 지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제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요결』은 정희성이 편집한 듯하고, 『보유』는 또 다른 술사가 모아 정희성이 갖추지 못한 부분을 보충한 듯하다.
『명황잡록』에는 장과의 신이하고 괴이한 행적이 많이 실려 있지만, 그가 녹명을 알았다는 말은 없다. 다만 이 책이 오성으로 운명을 추산하는 학문을 장과에게 의탁했으므로, 술사들은 마침내 과로오성이라는 이름으로 한 학파를 자처하였다. 한유가 지은 「이허중묘지」를 살펴보면, 이허중의 추명은 아직 연·월·일만 사용하고 시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개원·천보 연간에는 팔자조차 없었으니, 오성의 학문도 없었을 듯하다.
그러나 왕충의 『논형』에는 다음과 같은 뜻의 말이 있다. 하늘이 기를 베풀고 뭇별이 정기를 펼치므로, 하늘이 베푸는 기 안에 뭇별의 기가 들어 있다. 사람은 기를 받아 태어나고 기를 품어 자라며, 귀한 것을 얻으면 귀해지고 천한 것을 얻으면 천해진다. 귀함에도 관직의 높고 낮음이 있고 부유함에도 재산의 많고 적음이 있는데, 이는 모두 별자리 위치의 높고 낮음과 크고 작음이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한나라 말에는 이미 별의 위치로 녹명을 논하였다.
또 한유의 「삼성행」에는 자신이 태어날 때 달이 남두에 머물렀으며, 우수는 뿔을 치켜들고 기수는 입을 벌렸다는 구절이 있다. 두목은 스스로 지은 묘지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각성에 태어났고, 묘수와 필수는 각성을 기준으로 제8궁이 되며, 그곳을 병액궁 또는 팔살궁이라 한다. 거기에 토성이 있고 화성이 그 뒤를 이었다. 목성왕 양희는 ‘목성은 장수에 있으며, 각성을 기준으로 제11 복덕궁이 된다. 목성은 복덕을 맡은 큰 군자로서 곁을 구해 주므로 근심이 없다’고 말했다. 두목은 이에 ‘호주의 수령이 된 지 한 해가 차지 않아 사인으로 옮겼으니 목성이 각성에 복을 돌려준 것은 충분하다. 토성과 화성이 각성에 죽음을 돌려주는 것도 마땅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당나라 때 실제로 오성과 궁도를 사용해 길흉을 추산하였다. 장과의 이름에 의탁한 것에도 그럴 만한 연유는 있었던 셈이다.
정희성은 자신의 관직을 주부, 본적을 서안, 호를 창주라고 적었으나 생애의 전말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이징은 스스로 중도 사람이라 하며, 장과를 만난 때를 가정 2년 9월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더욱 괴이하고 망령되어 논변할 가치가 없다. 대체로 술가들이 자기 학설을 신비롭게 꾸미려 한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전하는 오성 관련 서적은 이 책을 시조로 삼는다. 별도로 『과로성종』이라는 책이 있는데, 아마 이 책을 바탕으로 넓혀 놓은 것일 것이다. 그 뒤에는 『천관오성술』도 나왔는데 이 책과 상당히 다르다. 이치에 따라 논하자면 화기는 천관을 따르고 정기는 과로를 따라야 하니, 두 집안의 방법을 서로 참고할 수 있다. 별의 도수에 대한 승제와 생극을 논하고, 해마다 해당하는 신살까지 함께 취하는 점 또한 전부 폐기할 수는 없다.
건륭 46년 12월, 삼가 교정하여 올린다. 총찬관 신 기윤, 신 육석웅, 신 손사의. 총교관 신 육비지.
번역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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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과에게 의탁했다는 판단, 당나라의 팔자 사용 여부에 관한 추론, 두 계통의 방법을 평가한 문장은 사고전서 편찬관의 견해입니다. 이 위키가 그 역사적 추론이나 점성술적 효력을 별도로 검증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문의 녹명·오성·궁도·화기·정기는 역사적 기술어로 보존했습니다. ‘목성왕 양희’의 호칭과 일부 서명·인명은 전사본을 따랐으며, 영인본에 대한 별도 교감은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